김은진 교수(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리는 ‘요즘 어째 지내냐’는 물음에 종종 ‘먹고 살만하다’고 답한다. 입고 살 만 할 수도 있고, 자고 살 만할 수도 있고, 놀고 살 만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살 만한 것의 기준이 먹는 것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옛날에는 그만큼 먹는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먹는다는 것만 힘들었을까? 입는 것도, 잠자거나 쉬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그야말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먹는다는 것 그 자체가 그만큼 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333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3분간 숨을 쉬지 못하면,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하면, 3주간먹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인간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산소와 물과 먹을 것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사는 동네에 따라, 또는 사는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들이 갈린다는 기사를 종종 보곤 한다. 어른들도 자신들이 사는 동네나 집을 은근히 과시하는 예는 각종 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그 집에 무엇을 갖추고 살고 있는가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어떤 차종인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 신고 있는 신발, 들고 있는 가방까지 어떤 브랜드에 얼마짜리인지를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오죽하면 짝퉁이라는 문화까지 만들어졌을까?
집에서부터 가방까지 이런 것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들에게 쉽게 내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고 사는 사람인지를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이런 물건들에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돈, 또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돈까지 빚을 내서라도 기꺼이 지불한다. 영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최고급으로 갖춰야 영업에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도 인구에 회자된다. 하다못해 내 주위에 많은 변호사들도 개업할 때가 되면 가장 큰 고민이 인테리어다. 최고급으로 갖추지 않으면 유능한 변호사로 보이질 않기 때문에 의뢰인들이 꺼려한다는 말을 흔하게 듣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경향성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이런 경향은 흔히 접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소홀히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먹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쉽게 내보일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무시되곤 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소위 웰빙 바람이 불면서 뭐든지 ‘유기농’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먼 나라의 ‘유기농’이 우리나라 시골장터의 먹을거리보다 더 좋은 것이라는 과시욕 또한 한 때 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시욕도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간다.
먹을거리에 관한 강의를 하다보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강의를 들었을 때의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한다. 길어야 한 달 이상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잠시잠간의 각성(?)은 여러 다른 방해요소로 인해 쉽게 포기되곤 한다. 그럴 여유(그것이 시간이건 돈이건)가 없다는 이유로 결국 먹을거리에 관한 관심은 다시 원상회복하기 마련이다.
먹는다는 것은 정말 귀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사회뿐만 아니라 생태계에서도 그 생존을 좌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를 지탱해 온 생태계의 순환이라는 것은 바로 이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생물이 어떻게 그 생명을 유지하는가가 먹을거리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내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 지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앞으로 1년간 이 지면을 통해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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