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이 정혜 엘리사벳
(천주교 우리농 전국 도시생활공동체협의회 회장)
나는 어쩌면 전생에 농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 갑자기 하게 되었다.
“사서 몸 고생 안 해도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러고 사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도 싫지 않던 마음들과
흔히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노여워하시던 부모님도 이런 나를 인정해줘 버리셨다.
내가 전생에 어쩌면 농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떠올리고 보니‘그간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시간동안 참으로 억척을 떨었구나’하며 슬며시 웃음 짓게 된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초창기에는
한마음본부장 신부님의 주도하에 활기찬 활동을 펼치던
서울교구 한강성당이 신부님이 떠나시고
우여곡절 끝에 문을 닫게 된 후로는
성모회 엄마들의 자발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단체도 없이, 매장도 없이 책상 하나 펼쳐놓고양평동으로 매주 물품을 받으러 다니던 날들, 내 카니발 차 한가득 우리농 물품을 채우고 다닐 때도
눈곱만큼도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신바람이 나던 기억은 내 평생의 보물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하하호호” 매주 금요일 책상 위에 펼쳐놓았던 물품들을 정리하고 나서 활동가들과 함께 해먹던 밥과 수다도 그리운 추억이다. 성당에서 활동을 못하게 되어서 1년 반 동안이나 지속했던 동작대교 다리 밑 직거래 또한 다른 본당활동가들은 갖기 힘든 경험이리라.
나는 어쩌면 전생에 농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십여 년의 본당활동을 접기가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성당 밖 동네가게에 우리 활동가들을 꼬셔 장을 만들어 놓은 지 어언 3년.
작년과 재작년엔 유기데이를 기해 개업기념 행사를 했었지만,
올해엔 가게세가 오른다 어쩐다 기타 등등의 외적요인들이 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통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이 바로 우리농 한강점이 동네 밖으로 나온 지 딱 3년이 되는 날이었네.
가게 문을 열기도 며칠 전 양파 250망, 감자 70상자를 한 줄로 서서 부려놓는
우리 활동가들을 보고 동네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던 모습이 난 왜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을까.
나는 정말로 전생에 농부였을지도 모르겠다.
3년 동안 우리는 매일 달팽이 눈물만큼씩 성장해 왔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닥쳐온 외적요소들 때문에
고달픈 우리들은 이제 다시 맨 처음 바닥부터 시작했던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그러고 보니
내일 우리농의 최고 인기 농산물 안동의 양파와 감자 직거래를 시작하는 날이다.
벌써 3년을 보냈다니…
아니 벌써 13년을 우리 한강성당 활동가들과 함께
그리고 또 도와주는 여러분들과 함께 여기까지 걸어왔다니….
자, 다시 일어나 가자!
천주교 우리농 전국 도시생활공동체 대표자협의회 김정이회장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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