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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뿌리: 농촌생활공동체

[농민의 소리] 한계수 동지에게

계수형님. 접니다. 창연이요! 서프라이즈죠?

 

 

경호형님 덕분에 어느 해보다 분주한 농번기를 보낸 형님께 농민의 소리를 통해 처음으로 글이라는 것을 올립니다. 저의 큰집 형님과 형님께서 친구가 아니었다면 열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차이 때문에 제가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을 겁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둘째가 저만할 때 이곳 화순 땅에 와서는 어느 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경호형님과 선후형님의 꼬임(?)에 넘어가 귀농에 대한 의지 하나만을 가지고 빈손으로 시작한 8. 너무 힘들었고, 지금 역시 그 과정 중에 있는 것만 같아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사실 잘 떠오르지 않아요^^). 하지만 잠깐 회상해보면 무엇보다도 흙 사람들 자연양계 작목반이 떠오릅니다.

 

 

 

생태적 삶의 가치와 공동체 실현을 위해 자제를 만들고, 기술을 연구하며 서로의 일을 함께 나누던 그때의 노력과 마음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저는 많이 타락(?)한 것 같습니다. 씁쓸하고, 머쓱합니다.

 

제가 어려울 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형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8년의 시간, 형님은 제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불가에서는 영겁의 인연을 쌓아야 옷깃을 스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형님과 저의 인연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라는 감탄어린 생각도 해봅니다. 그동안 어린 녀석인 저의 볼멘소리와 응석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신 형님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큰 부딪힘 없이 우리가 한 곳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형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형님의 제안으로 결성된 가톨릭농민회 광주교구연합회 화순분회도 5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 농가가 일곱 농가가 되었고, 모임도 제법 형식을 갖추고 있고, 매월 농가순회로 나눔의 폭을 넓혀가고 있고, 활동의 내용 또한 협동농사와 도농교류, 지역사회활동으로 알차지고 있고. 이 분위기면 올해나 내년에는 우수분회상 한번 기대해볼 법 하고. (조금 오버인가요?)

 

여하튼 막둥이 분회장인 제게 큰형님으로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전적으로 믿고 밀어주셨기 때문에 분회장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했습니다. 물론 모든 분회원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요.

 

 

 

형님. 을미년인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났습니다. 불과 며칠 전 신년다짐을 한 것 같고, 며칠 전 가톨릭농민회 대의원 총회, 교구연합회 총회, 분회 총회를 한 것 같은데 속절없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쓰다보니 남은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새삼 되새기게 됩니다. 형님, 우리 분회는 남은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낼까요?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선 형님의 새로운 도전인 작두콩 농사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우리 가톨릭농민회 안에서도 흠칫흠칫 느껴지는 효율성과 자본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현상과 눈앞의 현실과 현상의 문제를 앞세워 생명농업과 생명공동체를 호도하거나 뒷전으로 미루는 현상 속에서도 꿋꿋이 연구하고, 도전하고, 실천하는 형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후배로서 작두콩 농사가 정말 잘 되면 좋겠습니다. 잘 되어서 연말에 형님께서 기분 좋게 한 턱 내시면 더 좋고요^^.

 

아직 하고픈 말들이 더 많지만 지면이 채워지니 이제 슬슬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듭니다. 뒷담화로 경호형님이 제게 쓴 농민의 소리의 첫 동지에게를 보고 제가 경호형님께 전화해서 , 이거 너무 마감에 임박해서 쓴 것 아이요? 티가 너무 많이 나는데!”라고 하니, 실제로 그랬다고 하드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마감일 며칠 전부터 굉장히 많은 시간과 굉장히 많은 담배를 죽여가면서 글을 썼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요. 형님께서 바통을 이어야한다는 부담을 드린 건 아닌지 쪼까 걱정스럽긴 합니다만, 이렇게 다 쓰고 보니 경호형이 마냥 급하게 쓴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것도 느끼게 되고 제게 바통을 넘겨주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쪼록 다가오는 혹서에 무탈할 수 있도록 건강 챙기시고요. 우리 분회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 같은 지지와 응원을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형님! 사랑합니다.

 

 

한계수 농민은 화순분회 초대 분회장과 광주교구연합회 상임위원회를 지냈으며, 현재 교구연합회 감사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창연 농민은 현재 화순분회 분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2015년 8월 '농민의 소리'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