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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언론에 비친 가농·우리농

[평화신문]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민족 화해와 일치,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까

기도와 대화 위한 노력, 화해와 평화의 겨자씨로

 

 

▲ 지난 2013년 7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주관으로 자전거를 타고 1사단 남방한계선을 순례하고 있는

DMZ 평화의 길 순례단. 왼쪽으로 분단의 아픈 상징인 철책선이 보인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민족 화해와 일치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어찌 보면 막막할 수도 있는 주문이다. 하지만 분단 70주년을 맞은 우리 겨레에겐 피할 수 없는 소명이다. 의정부교구 파주 운정본당 ‘천사회’ 민족화해팀은 매주 토요일이면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에서 봉사에 나선다. 팀원 20명은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은형 신부)가 주관하는 비무장지대 순례 캠프 참가, 안성 하나원 봉사, 하나원 교육생 가정체험 지원, 북한이탈주민 자녀 공동생활가정인 ‘모둠살이 공동체’ 봉사로도 바쁘다. 기도는 기본이다. 다들 휴대전화 자명종 기능을 밤 9시에 맞춰놓고 그 시각이 되면 빠짐없이 주모경을 바친다. 매일 미사 전엔 당연히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묵주 기도 1단을 바친다. 팀장 박진(로사, 40)씨는 “지금은 화천으로 이전했지만, 몇 해 전 양주 하나원에 간 것을 계기로 봉사를 하게 됐다”며 “주위 분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바꾸고 화해 기도를 바치며 화해학교를 수강하다 보면 봉사의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분단도 분단이지만, 65년 전에 벌어진 동족상잔은 가뜩이나 적대적이던 남북 간 분단의 질곡을 심화시켰다. 최영곤(갈리스토, 73)씨는 1950년 5월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붙잡혀가 행방불명된 평양교구 최항준(마티아, 1920∼1950?) 신부의 조카다. 증오가 없을 리 없다. 그런데도 “용서해야 한다”고 그는 주문한다. “예수님이 용서해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 그래서 분단 70주년을 맞아 그는 요즘 하루에 30단씩, 일주일이면 200단씩 화해와 일치, 통일을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한다. 그는 “제가 1ㆍ4후퇴 때 고향 평북 선천을 떠나 월남했는데, 요즘도 삼촌 신부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고향 땅에 돌아가 감사기도를 바칠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말한다.

기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온 겨레의 통일 공감대가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돼도 진정한 통합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나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등에서 꾸준히 평화나눔학교나 민족화해학교를 열고 있는 이유다.

청주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훈일 신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와 활동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지난 10여 년간의 남북 교류와 대북 지원을 성찰하며 서울 민화위와 협력해 평화나눔학교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후 세대가 주류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중요한 건 평화이기에 우선 평화교육을 하고 그다음에 통일이나 화해, 통합 교육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간 교류ㆍ협력은 2010년 5ㆍ24조치 이후 ‘사실상’ 중단돼 있다. 2000년 대희년 당시 김대중(토마스 모어) 대통령 방북 이후 10년간 활발했던 남북 교류와 협력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방북자 수 또한 2010년 6000여 명에서 2014년 10월 기준 400명으로 크게 줄었다. 한국 천주교 대북 지원도 국제 카리타스를 통한 연간 한두 차례 지원에 머무른다. 2008년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이제 남은 유일한 남북 협력사업은 이제 개성공단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북녘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식량 문제, 곧 농업이다. 이에 가톨릭농민회는 지난 10여 년간 북측에 쌀과 비료, 비닐 박막 등을 지원하고 농기계 보내기와 종자 교류 등을 제안하는 등 활발한 교류 협력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5ㆍ24조치 이후 발이 묶였다.

손영준(프란치스코, 48) 한국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안 그래도 이번에 6ㆍ15 남북공동행사가 성사될 듯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는데 무산돼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북측 역시 화학 농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유기농업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어 20년 넘게 생명농업을 해온 가톨릭농민회가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언제라도 남북교류의 문이 열리면 곧바로 함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비록 대화의 문은 닫혀 있지만, 한국 교회는 여전히 기도로 통일을 준비한다. 온 겨레는, 특히 1000만 이산가족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반도가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는 그 날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에서 통일 사목 준비 중인 나명옥 신부는 “굳이 통일을 의식하지 말고 조건 없이 북녘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지원하며 교류와 협력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지금은 닫혀 있지만,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함께 주위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돕고 화해 사도직에 힘쓴다면 하느님께서 언젠가 통일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저녁 9시 민족 화해 위해 주모경 바치기, 아시죠!


분단 70주년을 맞아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교회가 펼치고 있는 기도 운동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지난 5월 “각 본당에서 6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지향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묵주기도 1단을 매일 미사 전에 바치고 매일 밤 9시에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모든 신자가 주모경을 바친다”고 결정했다.

의정부교구 A본당의 경우 본당 신부가 주일 미사 때에 전 신자들에게 이 기도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전례분과를 통해 해설자들에게 주지시켜 매 미사 전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묵주기도 1단을 빠짐없이 바치고 있다. 또 이 본당 신자들은 밤 9시만 되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지향으로 주모경을 바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역시 본당 신부의 적극적인 독려에 신자들이 공감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에 서울대교구 B본당은 6월 첫주까지는 전혀 바치지 않다가 본당 신부의 지시가 있자 둘째 주부터 미사 전에 기도를 함께 바치기 시작했다. 또 C본당의 경우 6월 25일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앞두고 바치는 9일 기도의 일환으로만 미사 전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본당 모두 9시 주모경 바치기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이나 참여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50대의 한 신자는 “5월 말 주일 미사 때에 주임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6월 1일부터 밤 9시에 휴대폰 알람 기능을 설정해 알람이 울리면 하던 것을 멈추고 주모경을 바치고 있다”면서 “신부님들이 이 기도 운동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신자들을 독려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2015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