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나 다녀오리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던 백남기 동지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11월 14일 그날 이른 아침 집을 나섰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지금 그때 나왔던 마음으로 백남기 형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중환자실 병상에 누워있는 백남기 형제는 공권력을 이용한 폭력진압으로 희생양이 되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개 사료 값 보다 못한 쌀값 올려달라고, 밥쌀 수입이 웬 말이냐고 알량한 나리들에게 이러다간 정말 이 땅에서 우리 쌀이 사라져 버릴 수가 있다고, 그렇게 되는 날 우리나라의 불안한 미래는 불 보듯 훤한 일이라고 경고하며 국가의 위기를 막고 국민의 생명줄은 농업을 지키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섰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식량이 무기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귀가 아프게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설마 설마하며 지나친 것은 저 위정자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많은 농민들까지도 농업과 먹을거리, 생명의 가치보다 무얼 심어야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라는 것에 큰 관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돈이 되는가에 비중을 싣는다면 얼마 못 가서 지속가능한 농업, 생명농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라 합니다. 하지만 밥쌀까지 수입해 들어오는 마당에 우리 농민들마저 벼농사 때려치우고 돈 되는 작물로 갈아 타 버린다면 밥 먹을 가치도 없는 저 위정자들이나 돈의 노예가 돼 버린 큰손들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를 게 뭐가 있나 싶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농촌은 농사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농촌을 떠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쌀 자급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못가서 손에 돈을 쥐고도 쌀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래도 아직도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국가의 테러에 의한 백남기 형제의 억울한 희생과 우리들의 싸움이 헛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안팎으로 힘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가농 50년을 자랑하기 전에 생명농업을 바로 세우는 동시에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명이 비록 힘들고 큰 아픔이 동반될 지라도 피하지 않는 자세로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폭력의 세력이 거셀지라도 우리는 불굴의 가농인으로 곧은 정신을 놓지 않고 기도하는 자세로 맞서야 하겠습니다. 화는 화를 부른다고 하니, 우리는 물이 되어 불(火)을 잡아봅시다.
백남기 형제가 꼭 다시 일어서는 기적을 바라며,
2016년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기운(聖靈)으로 가득한 한해가 되길 기도합니다.
임봉재 비비안나 가톨릭농민회 마산교구연합회
전 전국회장(2010년부터 11년까지 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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