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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

[시] 누구인가


-송만철-



“아빠 얼른 일어나 손주 얼굴 봐야지” 막내딸 백민주화의 말


일어날 수도 볼 수도 없는 남기형이여

이 땅의 농민이여


물대포를 쏴서 쓰러뜨린 자는 누구인가

살무기와 같은 물대포로 죽음까지 내몬 자는 누구인가

마지막 절규와 같은 몸부림을

폭력집단으로

빨갱이로 테러리스트로 내몬 자 누구인가


농자가 천하지대본이라 했거늘

근대화 현대화 자본화 기계화 될수록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끝간데까지 내몰린 농이여

이 땅의 농민들이여

백남기 형이여


눈이 내린다는 절기 小雪이 멀지 않았는데

일년 농사 거둬들여 밀씨 보리씨까지 뿌리고

큰방에 아옹다옹 장작불까지 모아서


따순 아랫목에 이웃들과 모여모여 정담도 나누며

한 해 농사 돌아보고

내년 농사일들 설레기도 하면서

눈 내리고

휑한 들판 바람소리 밤새 깊어질텐데


누가, 누가, 누가

형을 서울로 내몰았는가

사경으로 헤매게 만들었는가


쌀값은 떨어지고

거둬들인 농산물 제 값으로 팔 때가 없고

자본화된 농업경영인으로

자연 파괴적인 대량생산화로

살아라 살아라 윽박대면서

성공해라 성공해라 하는가


경제, 체제 속에 죽으란 말인가

생명은 깡그리 싸그리 사라지란 말인가

자연의 순리,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세상은 아닌데

이것은 아닌데


비 내리고 눈 내린 이 들판에

내 힘으로 내 피땀으로 내 손발로, 온 몸으로

거둬들인 천지만물이 깃든 씨를 말려버리려 하는가


형, 그래도 일어나셔야죠


처음 본 손주도 덥석 안아보고

막내딸도 아들도 큰 딸 내외도

얼싸 둥둥 안고 이 땅의 들판을 당당히 걸으셔야지요


어서 어서 일어나셔셔

장날, 보성 장날

시장 어디 국밥집에서

막걸리 한잔 벌컥거리면서

살아가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꼴 애기하며

우리 만남 깊어져야지요

우리 마음도 사랑도 드넓어져


더 힘을 불끈 다져서

그렇고 그런 세상 뒤엎어야지요


딸이 안겨준 손주들의 세상

눈물난 아들 딸들의 세상

꽃 나무 구름 눈 비 바람 산 강 바다 다다 무엇이든

푸르러 푸르러

좋은 세상, 천지 만물이 회돌아치는 세상

하나 하나 일굽시다요 형, 형


어서 어서 일어나셔야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나아가지요

일어서야지요


남기형


딸이 멀리서 온 사위가

손주가 바라보고 있네요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셔야

이 세상 보고 또 보고 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