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실

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농민 약력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행진 도중 경찰 당국은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고압 물대포를 직사하였으며, 쓰러진 뒤에도 수십 초 간 직사를 계속하였고, 구호조치를 취하러 온 이들에게까지 직사를 계속해 빠른 응급 치료를 가로막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보성군에 사는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이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지난 11월 14일 전남 보성에서 상경한 백남기 농민에 대해 마을사람들은 흥 많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서둘러 밀을 뿌리고 다음 날 전국농민대회,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은 아내와 함께 밀농사 등을 짓고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왔다. 또한 자기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 농민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 농업 살리기에 매진한 사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