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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구유입니다




메주 만들기로 성탄 카드를 못 썼습니다

수녀님께서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졸시를

성탄 카드로 보내 주셨습니다 


가물가물 거리는 시에서

우리 시대 구유가 되신 

임마누엘 백남기 농부가 떠올랐습니다


새벽미사 알람이 우는데

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천근만근 육신을 일으켜 

새벽별빛 밟으며 귀농인의 집으로 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다미아노 십자가 아래서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정부로부터도 버림받은 농민들을 기억하며

만나생태마을 식구들과 묵주기도를 바치고

새벽미사를 드리고

우주의 하느님께 큰절기도를 바칩니다


기적처럼 일어나소서


멀리 해남 땅끝으로

콩 여섯 가마 실고

메주를 만들러 갑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청년 예수처럼

콩을 씻고 조리질을 해서

두 바가지씩 보자기에 담아

커다란 압력솥에 넣었습니다


들판을 비추는 별빛이

산골처럼 쏟아지는 밤 열 시

깜박깜박 별빛도 졸고 있는 새벽 두 시

두 가마솥에 가스 불을 붙였습니다


새벽 다섯 시 

가마솥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콩 한 입 오물거리며

루치아노 루실라 베드로 벨라뎃다 윤호요셉   

선한 농사꾼 부부 선교사 수도자 사제

메주 만들기 놀이에 신이 났습니다


갈고 보자기로 치댄 콩을 

메주틀에 보자기를 깔고 

다지고 두둘겨 메주를 만듭니다 


콩이 식으면 안 되기에

청국장 미숫가루 한 잔 서서 마시고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시큰거리는 팔목

그 고통 속으로 

선한 농부가 걸어옵니다


돈 받고 파는 된장보다

나누는 고추장 된장이 많을 만큼 퍼주는

그토록 선하게 살 수 없는

이 땅의 진정한 농부

의로운 요셉 성인을 닮은

백남기 임마누엘


"얼른 일어나 메주 만들어야 하는데

저 양반이 저렇게 누워 있네요"


메주를 만들수록 간절해 지는 

내년엔 웃음꽃 피우며

백남기 박경숙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그리고 손자 지오랑

샛거리 막걸리 마시며

쾡가리 장구 징 치며 

지오 손잡고 더덩실 춤추는

메주 만들기 놀이 

한 판 신명나게 할 수 있기를

백남기 선한 농부이시여

기적처럼 부활하소서

기적처럼 일어나소서


우리 시대의 구유

농촌으로 내려오소서

아기 예수님이시여


우리 시대의 구유

백남기 선한 농부를 

생명으로 탄생시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