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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뿌리: 농촌생활공동체

[농민의 소리] 순창분회 전명란 농민이 지리산분회 김영길·이철승 동지에게

지리산분회 김영길, 이철승 형제자매님께

 

안녕하세요. 갑자기 온 봄에 많이 바쁘시지요?

 

일생을 살면서 동지에게라는 주제로 편지를 쓰기는 처음입니다. 저는 동지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던 세대입니다. 동지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고 곱씹어 봅니다. 요즈음처럼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빠른 속도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욕망도 이리 뻗고 저리 뻗는 세상에서 좀처럼 땅을 떠나지 않고 땅만 보던 농민들도 세파에 휩쓸려 교육받는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갈팡질팡하는 세상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땅을 이탈해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반문하기도 합니다.

 

저희부부처럼 도시에서 살다 귀농하셨다지요?

4년 전인가, 교구 회의 차 선배 동지님 댁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생전처음 그 유명한 실상사에도 가 보았지요. 한번 찾아뵈었던 선배님들의 삶터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산과 산 사이 고요한 땅이었지요. 지리산 둘레길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홀로 걷던 조용했던 그 길이 그립다하셨지요. 봄이 시작되기 전이라 초록이 가득할 때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건만 실천을 못 하였습니다.

 

 

ⓒ 가농, 우리농 전국본부

 

 

개인적으로 오랜 담소를 나눈 적은 없지만, 저희 분회에게 동지님은 가농 소식지에 실린 글을 통해 우리 농민들이 세상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며 살도록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생명농업 실천을 위한 한 길을 올곧게 걷고 계심에 존경을 표하며, 저희도 그 길을 잃지 않도록 지금도 동지님 가시는 길을 곁눈질로 유심히 지켜보며 맘을 다잡습니다. 험하고 개인적 영달이 없을지라도 기꺼이 가주시는 동지님이 계시기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지님 부부의 삶은 저희 후배들의 등불입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눈이 멀어갑니다. 눈멀지 않고 길 잃지 않도록 그 전처럼 목소리 내어주세요. 자본 앞에 무너지는 공동체, 사라지는 아름다운 정서들. 우리 가농 동지들이 똘똘 뭉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생명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도록.

 

예전같이 우리 동지들을 향해 곧은 소리, 힘 있는 말씀 내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사람의 깨어있는 말씀이 길 잃은 동지들을 바른 하느님 나라도 이끌어 줍니다. 하얀 눈길, 어지럽혀지지 않은 곧은 발자국을 보고 저희는 따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는 우리의 생존뿐 아니라 국가의 존폐, 더 나아가 신앙인으로서의 삶에 필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외롭게 외치셨던 선배님이 더욱 간절하게 떠올랐습니다.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다음을 위한 세상을 멀리 보지 못하는 아직 미숙한 저희들에게 선배님의 빈자리는 더욱 소중합니다. 마음의 평정이 오셨으면 농업의 위협을 넘어서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뵐 수 있길 바라는 작은 소망을 담아 이 편지글을 올립니다.

 

진솔한 흙내 땀내 나는 선배 동지님 부부의 모습은 뵙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늘 지금처럼 하느님 따뜻한 품속인 자연에서 흙내 풍기는 생명의 먹을거리를 기쁘게 생산하시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희도 그 사명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형제자매님.

 

 

전명란 글라라 전주교구연합회 순창분회

 

 

 

 

동지에게는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의 릴레이 편지입니다. 농민회원 중 한 명을 지목해 위로, 질문, 제안 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써주시면 됩니다. 친분 있는 농민, 이름만 아는 농민 등 가농 회원이라면 모두 받는 이가 될 수 있습니다. 편지를 받은 농민은 다음 호를 통해 릴레이 편지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