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프란치스코 신부 (가톨릭농민회 원주교구 연합회 담당사제)
나는 앞뒤, 좌우가 산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오히려 산보다 작은 조그만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변변한 장난감도 없는 작은 시골에서는 모든 놀이며 삶이 산과 들을 쏘다니며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억지로 공소 미사에 따라다닌 것이 전부였다. 공소 강당에 걸려있던 무서웠던 그림들(그것은 아마 14처라고 생각된다)에 주눅 들었던 탓인지, 어린 나이 나에게 하느님은 호랑이 같았던 우리 아버지처럼 그저 무서운 분이셨다. 주변에 있던 높은 산들이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편안한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어린 마음에 괜한 것으로 상처받고 올라갔을 땐 너그럽게 받아주며 위로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산과 자연은 그대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언제나 하늘 보다는 산이 먼저 가슴에 떠오른다.
서품을 받던 해, 내가 나고 자랐던 고향 땅에 정부에서 댐(동강댐)을 건설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마침 교구 정평위 위원이었던 터라 지역사람들과 함께 댐건설 반대운동을 함께 했다. 댐 반대운동을 하면서 교회가 왜 자연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에 나서야 되는지 그 명분을 깨닫게 되었고, 댐건설 백지화 이후에도 생태신학을 공부하며 직간접적인 여러 형태로 환경운동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해가 더해 가면서 환경을 보전하려는 열정과 생태신학에 대한 이해는 더해갔지만, 사제가 된 후 도시생활에 물들어가며 자연적인 삶과는 점점 멀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문득문득 느끼는 공허함의 근원은 자연에서 멀어진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시골로 들어가 땅을 딛고, 땅을 만지며 살 수 있기를 꿈꾸었다.
그 꿈은 예상했던 것 보다는 조금 빠르게 이루어 졌다. 올 해 초 교구 가톨릭농민회 전담 발령이 나서 시골 폐교에 들어와 농사만을 주로하며 한해를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농민회도 그러려니와 폐교를 귀농학교와 생태학교로 활용할 계획이어서 나 스스로 농사를 지어보지 않고서는 맡겨진 일들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아 올 한해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할 엄두를 내는 대신 농사짓는 일에만 전념하였던 것이다.
오랜만에 가까이 지내는 산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나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맨발로 밟아보는 땅의 촉감은 그렇게 부드럽고 포근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노동으로 흘리는 땀은 그동안 도시 속에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켜켜이 쌓인 찌꺼기들을 쏟아내는 듯 마음마저도 정화시켜주었다. 일하는 동안의 피로와 고통이 없진 않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낮 동안 생물들을 어루만지며 피어났던 농작물과의 대화들, 조용한 고독과 함께 찾아오는 평온함만을 기억하게 된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등 뒤 저녁놀 속에서 하느님의 흐뭇한 미소를 느끼며 단잠에 빠져들면 다음 날 아침도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올 한해를 살면서 느끼는 단 하나의 후회는 “이다지도 좋은 삶을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했을까?”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정부는 세계 모든 나라와 FTA를 기필코 체결 할 태세이다. 쌀 시장마저도 완전 개방하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들만 남아 지키고 있는 힘겨운 우리 농촌은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생명의 터전인 농촌이 죽어간다면 국민들의 생명도 위험에 처할 것이요, 생명의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 신앙도 위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의 터전을 노인들과 함께 부여잡고 사는 것도 이 시대 성사적인 삶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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