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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뿌리: 농촌생활공동체

[농민의 소리 103호] 생명공동체, 다시 길을 묻다

 생명운동답게! 우리농답게!

 

묻고_정현찬 미카엘 본회 전국회장

답하다_정재돈 비오 본회 제19, 20대 전국회장

 

 

 

 

농민의 농업에서 국민의 농업으로

정현찬 : 지금 주력하고 있는 일은?

정재돈 :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과 국민농업포럼 상임대표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간 협동조합연구소는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에 대한 연구와 입법운동을 통해 협동조합기본법시대를 여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이 특별법으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본법이 2011년말 제정되고, 2012UN이 정한 <세계 협동조합 해>와 더불어 이제 우리 사회는 협동조합 붐을 맞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연구소는 협동조합과 관련된 상담, 교육, 조사, 연구, 지원 등으로 바쁩니다. 요즘은 2015311일 농협 조합장 동시선거가 정책선거, 공명선거가 될 수 있도록 연대하며 위탁선거관리법 개정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국민농업포럼은 농민만의 농업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농업이 되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만들어졌습니다. 가농과 전국농민연대 현역일 때는 주어진 일정과 현안에 대처하는데 급급하여 농업계가 가지고 있는 총역량을 다 결집해 활용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들었고, 또 농업계와 각계각층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과 공감을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농업계와 안팎 여러 부문을 망라해 농업농촌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포럼을 열고 필요하다면 같이 행동할 수 있는 플랫홈 역할을 하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때론 국민농업포럼을 나이 먹은 원로들의 모임 정도로 생각하기도 했어요. 처음 집중했던 일은 음식교육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전달하는 식생활교육기본법 제정운동이었지요.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정되고는 각계의 민간주체로 식생활교육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으로 확대, 전국화 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후에는 농업계 총역량을 모으고 농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자 농정거버넌스를 위한 공적 기구로서 시군 농업회의소 시범사업, 또 국민농업헌장 제정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탄압을 먹고 자란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 일찍이 농민운동을 시작해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했는데 어떻게 하게 되었나?

정재돈 : 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와의 인연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복역한 뒤입니다. 석방된 후 고향인 강원도 강촌에서 소여물을 끓이던 참에 가농 강원연합회가 꾸려진다는 소식을 듣고 결합한 게 시작입니다. 1977년 봄부터는 박정희 정권의 안방이자 열악한 농촌지역인 안동교구에서의 활동을 했습니다. 초기 활동은 신앙을 기초로 농민 의식화와 조직화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며, 회원 한 사람 분회 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찾아다녔습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해가 질 무렵이면 생전 보도 듣도 못한 마을에 가서 농민들과 밥을 먹고 술을 한 잔 나누며 가농을 소개하고 농민운동가를 발굴하고 조직화했습니다.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강제지붕개량, 증산을 위한 통일벼 경작강제, 농약강매, 강제출자 등 유신독재 아래 농민의 민주적 제 권리가 극도로 억압당한 상황이라, 당시 활동은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이었고 탄압을 먹고 자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생명공동체 운동의 성과와 과제

정현찬 : 모두에게 열려있는 현장교회로써 약 20여 년 동안 한국농민운동의 주축을 이루며, 전체 민족민주운동에 주요 역량으로 활약한 가농은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출범 후 새 운동, 작은 가농운동으로 생명공동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성과와 과제에 대한 생각은?

정재돈 : 사회제도만 변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개인) 자체가 향상되어야 한다 해서, 사회와 개인의 동시적 변혁이 얘기되고 농민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그전인 80년대에도 있었지만, 당시는 농지세 시정, 조합장직선제를 비롯한 농협민주화, 외국소와 양담배 수입 등 수입개방 반대, 농가부채 탕감, 강제농정 철폐, 민주헌법 쟁취 등 격화되는 대중투쟁에 쫓겨 전조직적으로 집중해 진행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전농 건설에 주력한 후에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해 20여 년을 지나오며 여러 일들을 겪었고,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한살림, 우리밀살리기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우리농운동, 귀농운동 등 대안운동의 종갓집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시본당에 도시생활공동체와 농촌에 가농분회나 농촌생산공동체를 건설하여 우리농운동의 틀과 기반을 구축하고, 생명농업에 대한 기준을 확립한 것은 큰 성과입니다. 그동안 헌신적으로 애써 오신 가농회원과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와 실무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생명운동을 잘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듭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 그윽한 향기가 나는 삶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사도직으로서 다양한 생활실천과제를 제시해 실천하고, 정호경 신부님의 책 농민교리서밥도 먹고 말도 하고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거나, 최종수 신부님의 절 기도를 전파하는 노력도 이에 해당합니다.

평가와 변화가 필요한 일들 가운데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집중과 협력을 끌어낼 목표가 구체적인 수치로 설정되고 관리되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한살림이나 아이쿱이 참여하는 조합원과 물류가 수십 배로 성장하는 동안에도 우리농 참여자나 생명농산물 물류 수치의 큰 변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기존 농민회원이 이웃에게 함께 가농을 하자고 권할 때 장애가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가농에 내놓은 물품도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누구더러 함께 하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조직이나 운동은 생물체와 같아서 성장 강화되지 않고 정체하면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생산성이나 신진대사에 문제가 없는지 생명공동체 운동을 지속하고, 생명농업 물품 이용 확대를 위한 총점검과 평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분명하게 공유된 목표 없이 막연하게 관성대로 각개약진 바삐 가다보면 돼지가 하루종일 꼬리를 흔들어도 파리 한 마리 못 쫓는 꼴이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농에 참여하는 이(회원, 출자금, 회비, 교육이나 활동과제수행이나 사업 참여도, 충성도)가 늘어나고 물품이용()도 확대되자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농, 우리농 실무자 등 주체들이 정말 심각하게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시기마다 집중하고 협력할 방도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가 노력하며 평가하고 서로 격려하는 게 절실합니다. 과연 올해 목표달성을 위해 가격 품질 서비스 유통마진 등은 적합한지, 본당교육이나 농촌방문이나 도시생활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은 어떻게 강화할지, 우리농의 확대를 위해서 또 가농 회원이나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가 늘어나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와 환경을 마련하는데 서로 탓하거나 의존적이지는 않았는지, 서로 간에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등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시도가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농은 이들 생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농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가? 배울 점은 무엇이고 바꿀 점은 무엇인가? 왜 우리농을 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사이좋게! 신나게! 생명운동답게! 우리농답게!

정현찬: 마무리로 더 하고 싶은 말은?

정재돈 : 경제전망이나 주변 상황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만 우문현답(리의 제는 장에 이 있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가톨릭농민회 회원과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이 많아져 새해에 우리농운동이 더 사이좋게, 신나게, 생명운동답게, 우리농답게 전개되길 일구월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