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뿌리: 농촌생활공동체

[농민의 소리] 유정란 작목반 창연에게

가톨릭농민회 2015. 5. 20. 11:51

광주교구연합회 화순분회 이창연 농민에게 노안분회 김경호 농민이 보낸 편지

 

 

 

 

 따뜻한 봄 날씨를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잠시 우리를 움츠리게 하지만, 오는 봄의 기운을 뉘라서 막을 수 있겠는가? 날로 따뜻해지는 날씨에 덩달아 마음도 바빠지는걸 보니 나도 천상 농사꾼은 농사꾼인가보네.

오늘은 자네가 병아리 받는 날인데 하필 꽃샘추위라니, 자네나 병아리나 고생 좀 하겠구만. 며칠 전에 받은 내 병아리는 이제 제법 날개도 나오고 밥도 많이 먹고 힘차게 뛰어다니는 폼이 활기가 넘친다네. 나는 닭을 키운 지 10년이 되어가고 자네도 5년이 넘었을 듯 하니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네만, 병아리 받을 때는 항상 긴장이 되고 설레는 게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네그려.

 

 

ⓒ 가농 우리농 전국본부

 

 

나는 요즘 자네가 가톨릭농민회나 유정란작목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게 너무나 흡족하고 큰 힘이 된다네. 자네가 오기 전에는 내가 가농에서도 거의 막내고, 작목반에서도 막내라서 모든 일을 도맡아 했는데 그 일을 대신 해주어서 고맙고, 항상 웃는 얼굴로 시원하게 일처리 하는 모습이나,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면서 모든 걸 좋게 좋게만 넘어가려는 나와는 달리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문제점을 꼭 집어 말하는 자네의 문제의식은 나의 부족함을 보완해주고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네.

 

나는 특히 자네가 주변 사람들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좋게 보이네. 나나 자네나 항상 바쁜 농사꾼이지만 나 같으면 전화 한번하고 말거나 무소식이 희소식이거니하면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데 내 시간 쓰는걸 아까워했을 터이지만, 자네는 작목반 형님들 농장에 한 번 더 찾아가고 얼굴만 보고 돌아서는 일 없이 꼭 식사라도 한 끼 같이 하고 오고 그러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모습이 참 좋네.

 

우리가 말하는 생명운동의 이론이 거창하거나 그 뜻이 좋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자네같이 꾸준하게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함께 모아가는 과정이 생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싶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우리 운동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점에서 자네는 나의 든든한 벗이자 동지라고 생각하네.

 

자네는 학생회와 청년회를 거쳐 가농까지 온 나에게 가톨릭판 성골이라고 부러워하지만 나도 자네에게 부러운 게 많네. 나는 하나도 없는 딸이 셋씩이나 있는 것도 부럽고,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아내(라고 쓰고 마나님이라고 읽는다나 뭐라나)에게 왕처럼 군림하며 사는 것도 부럽고(물론 집에서는 나처럼 쩔쩔매겠지만!), 그 큰 키와 준수한 외모도 부럽고, 거기에 더한 노래실력과 기타연주 실력도 부럽다네.

 

내가 자네에게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는 건 알고 있겠지?

자네가 말하는 그 라이센스’, 농민회원들뿐 아니라 도시생활공동체 회원들과도 만날 기회가 많은 자네가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라이센스의 문제.

이번 봄이 아니라도 좋네. 가을이든 내년 봄이든 간에 예비자 입교식에 자네가 들어갔다는 기쁜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으면 좋겠네.

 

부디 건강하고 웃음 잃지 마시게.

 

김경호 예로니모 광주교구연합회 노안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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