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소리]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내 몸을 살리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손영준 프란치스코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농민운동단체 실무자를 포함한 많은 운동가들에게 “몸도 챙겨가면서 하세요”는 어디서나 흔히 듣게 되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운동가들은 힘들게 일하는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격려 정도로 받아들이고 흘려버립니다. 이렇다보니 운동가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맡겨진 일에 헌신하다 큰 병을 얻거나 지병을 악화시키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또한 단식하면서 내 몸 챙긴다고 하면 왠지 호사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이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존재합니다. 저도 2009년 건강검진에서 간경화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는 집중적으로 건강 챙기는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늘 다른 일보다 후순위로 밀려 6년이 지난 이번에야 민족생활학교(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주관, 가톨릭농민회 후원)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 몸을 살피고 살리는 일이 얼마나 사회적인 일이고 공적인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환경, 먹을거리, 농업, 정치, 자본 중심의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내 몸을 살리는 일은 운동가의 몸을 튼튼하게 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을 넘어 지극히 공적이고 이타적인 일이며 결국에는 세상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내 몸을 살리는 일에 매우 이기적으로 적극 나서야 합니다.
내 몸 하나 살피고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마을을 바꾸고 세상을 바꿔 나가겠습니까. 생각해보면 너무도 분명합니다. 지금 세상의 병은 대부분 ‘생활습관병’입니다. 그래서 내 몸을 고치는 것은 내 생활과 의식을 바꾸는 것이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식)을 바꿔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마을의 지도자가 되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내 몸과 생활은 이 사회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농민회도 현재는 생명농산물 직거래 활동에 치우쳐 있지만 다음 단계는 농촌지역에서 마을, 지역, 세상을 바꿔나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니 ‘민족생활의학:생명살림운동:가톨릭농민운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 싶었습니다. 가톨릭농민회의 생명운동(살리는 운동) 교육이 내 몸을 살피고 살리는 일에서 출발한다면 운동의 주체적 참여와 지속성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것입니다. 또 도시생활자들에게 먹을거리 안정성과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해도 내 몸을 살리는 일에서 출발해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자기 몸을 병원에 의탁하여 의사의 말을 재판관의 말처럼 믿어 의료주권이 상실된 사회에서 단식을 방편으로 내 생활과 의식을 바꿔보자는 말이 실감나지 않거나 7박 8일, 10박 11일이란 긴 시간 내서 교육받는 것 자체로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어떻게든 이 교육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인데, 여기에 농민운동 단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은 운동가의 건강을 챙기는 것 뿐 아니라 농민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도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무슨 광고처럼 “이 교육이 얼마나 좋은데 말로 다할 수는 없고…”. 마지막으로 혹시 단식을 방편으로 한다니 괴롭고 지루하고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매일 새벽, 하루를 여는 풍욕‧냉온욕‧관장 그리고 감동적인 강의들(건강, 역사, 먹을거리, 환경, 사회, 문화 등)‧산책‧빼 놓을 수 없는 참가자들과의 담소와 산책, 수시로 하는 모관운동과 붕어운동, 족욕…. 첫날의 긴장감을 빼면 7박 8일 내내 행복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습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