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나의 소원은 유족 되는 것”… 통곡과 눈물로 버틴 365일
팽목항 못 떠나는 실종자 가족 권오복씨의 1년
15일 진도군 조도면 팽목항 방파제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진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단원고 2학년 조은화·허다윤양,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일반인 탑승자 권재근씨 아들 혁규군, 이영숙씨. /진도=김형호기자
세월호가 진도 맹골수로에서 속절없이 침몰한지 꼬박 1년이 됐지만 배 안에는 지금도 9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 가라앉은 세월호와 가장 가까운 항구, 팽목항에는 여전히 실종자들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소원은 “유족이 되는 것”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원을 가진 사람들. 가족을 품에 안지 못한 죄책감에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온 그들이 1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을 꼭 찾아야한다는 절실함과 애달픈 가족애였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보내온 정성과 배려 때문이었다.
◇눈물로 버텨온 실종자 가족들의 1년=실종자 가족 권오복(61)씨는 15일로 팽목항 방파제 옆 컨테이너에 머무른지 1년이 됐다. 그는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고 있다. 동생 가족은 제주도에 구입해둔 감귤농장으로 온 가족이 옮겨가기 위해 지난해 4월 15일 제주도 행 여객선 세월호에 올랐다.
이튿날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배에서는 권씨의 조카 지연(6)양만 무사히 구조됐다. 지연양의 어머니는 주검이돼 돌아왔고, 동생 재근씨와 조카 혁규군은 여전히 가라앉은 세월호 안에 남겨져 있다.
권씨를 제외한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세월호 선체 수색이 중단되면서 모두 팽목항을 떠났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가족들은 다시 팽목항으로 되돌아왔다. 세월호에 남은 가족들이 생각날 때면 그들은 실종자들이 잠들어있는 맹골수로와 가장 가까운 팽목항을 찾아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종자 가족의 눈물 닦아준 사람들=지난 1년간 팽목항에 머무르고 있는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준 것은 정부의 보상 약속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정성과 배려가 실종자 가족들을 하루하루 버티게 하는 힘이 돼줬다. 3월 25일 제주에 사는 김성규님 한라봉 2박스, 26일 진도 주민 장진희님 미역, 27일 함안에서 보내온 한라봉 1박스, 쌈야채 1박스, 28일에는 전주에 사는 송봉주씨가 오렌지를, 무안에 사는 황선숙씨가 된장과 고추장, 청국장을 보내왔다. 전국 곳곳에서 지난 1년간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가족을 위해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가족식당’으로 음식과 생필품을 보내오고 있다.
지난 1년간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방문객도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1일 불교재단 소속 1000여 명의 스님과 신자들이 와서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재를 지냈다. 천주교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팽목항을 찾아 가족들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를 올리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천주교 안동교구 가톨릭 농민회가, 9일에는 의정부교구 신부와 신도들이 찾아와 위로했다.
권오복씨는 “지난 1년을 팽목항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을 되찾아야한다는 절실함과 이름모를 사람들의 끝없는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어서 빨리 차가운 물에서 어린 조카와 동생을 꺼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2015년 4월 16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