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고글] 밥쌀용 쌀 수입할 이유가 없다
- 정부는 양치기 소년이 되려는가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겸임교수
작년 쌀 생산이 풍작이어서 올해 국내 쌀이 과잉 상태이다. 쌀값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정부는 최근 쌀값 안정을 위해 약 7만 7천 톤을 추가로 수매·비축하는 결정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밥쌀용 쌀을 수입하겠다고 입찰 공고를 낸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올해부터 밥쌀용 쌀 수입은 더 이상 의무사항도 아니다. 가공용이든 밥쌀용이든 그 용도를 우리나라가 마음대로 선택하여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는 의무수입물량의 30%를 반드시 밥쌀용으로 수입해야만 하는 ‘의무 속의 의무’가 있었다. 지난 2004년 정부가 쌀 협상을 잘못해서 그동안에는 이와 같은 부당한 이중족쇄를 감내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수입쌀의 국내산 둔갑이나 수입쌀과 국내 쌀의 부정 혼합유통 등의 문제를 초래하여 소비자인 국민에게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인 농민에게도 쌀값 하락이라는 피해를 주었다. 국내에도 밥쌀용 쌀이 과잉인 지금 밥쌀용 쌀을 외국에서 더 수입하겠다는 정부의 행태는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밥쌀용 쌀 수입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수차례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약속한 사항이다. 쌀 시장을 관세화로 개방하는 대신 국내 쌀 농가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밥쌀용 쌀 수입은 최대한 억제하고 가공용 쌀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 밥쌀용 쌀도 과잉인 상황에서 정부가 밥쌀용 쌀 수입을 하겠다고 나서니 농민들이 정부를 양치기 소년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부는 밥쌀용 수입쌀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식으로 궁색하게 둘러대지만 설득력은 별로 없다. 정부가 말하는 수요 자체가 원래 국내 쌀로 충당하던 것이었는데, 과거의 잘못된 쌀 협상으로 최대 30%까지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여 정부가 시중에 풀었기 때문에 발생한 수요이다. 따라서 밥쌀용 쌀 의무 비중이 없어진 지금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수입쌀로 충당하던 밥쌀용 쌀 공급을 국내산으로 대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수입산 밥쌀용 쌀을 국내산으로 충당할 경우 한 끼 밥 한 그릇에 약 60원 내지 70원 정도의 차이만 있기 때문에 무슨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만약 수입산 쌀에 입맛이 든 일부의 소비가 있다면 민간업체가 정당하게 관세를 물고 수입하여 공급하면 될 일이다. 굳이 그 입맛까지 정부가 나서서 맞춰 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실책을 바로잡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매년 약 40만 9천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지만 가공용이나 밥쌀용과 같은 용도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권리에 속한다. 내 돈 주고 쌀을 수입하면서 그 사용 용도까지 수출국의 눈치를 보라는 협정이나 규범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가 밥쌀용 쌀을 수입하겠다는 입찰 공고를 조속히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모내기만 하더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민들을 이런 일로 아스팔트 농사까지 짓도록 내모는 정부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